트래일러로 정보가 하나 둘씩 공개될 수록 그나마 있던 의심도 같이 사라져 갔다. 트레일러보다 훨씬 뛰어난 비쥬얼을 실물이 보여주고 있고, 특히 사진모드는 카메라 위치 변경만으로도 예술적인 샷을 만들어 준다. 극히 일부 지역이나 컷씬 등에서 카메라 위치 변경을 막아둔 것이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스크린샷 자체가 주 컨텐츠 중 하나로 여겨진다.
사진모드에서 가장 맘에 드는 기능은 시간 변경 기능인데, 시간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광원은 빛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비쥬얼을 만들어 낸다. 특히 일출, 일몰 때의 붉은 빛이나 한 낮의 쨍함과 또 한 밤 중의 전혀 다른 느낌은 한 게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광원을 모두 담고 있어 잘 만든 엔진 하나가 게임을 어떻게 살려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대 최고의 비쥬얼에 감탄했지만 가장 놀랐던 점은 조작감인데, 30fps 이면서 60fps 급의 조작감을 보여주고 있다. 거의 데스티니에 가장 근접한 조작감이라고 보는데 FPS를 만들던 게릴라답게 액션, 슈팅에서의 조작감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있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게임 전체에 널려 있는 수집과 사냥 요소를 뛰어난 조작감에 따른 액션과 비쥬얼로 이 또한 또 하나의 재미 요소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액션과 비쥬얼 때문에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쳐일 줄 알았지만 이 게임은 RPG다. 바이오웨어식 도입부에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모험을 떠나도록 강요하고 본인의 선택에 의해 동료를 만들고 함께 적을 물리치고 비밀을 밝힌다는 전형적인 RPG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 레벨업이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스킬을 익히는 것도 마찬가지. 다만 주인공의 외형이 너무 고정되어 있고 청동기시대 원주민 수준의 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의상은 아쉬움을 준다.
자유로운 이동과 점프로 왠만한 산은 오를 수 있고, 슬라이딩의 미끄러지는 느낌도 매우 훌륭한데 이에 너무 심취하다 보니 데스티니의 슬라이딩이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한없는 빠른 이동과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빠른 로딩이 주는 쾌적함속에 필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경치를 감상하고 퀘스트를 해결하는 모습에서 차세대 RPG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RPG라고 해서 딱히 스토리와 많은 대사, 그리고 선택지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모험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느낌을 주는데서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많은 경우에 산 타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자체는 언차티드와 다를 바 없지만 좀 더 자동에 가깝다. 그냥 방향만 조절해도 알아서 오르는 수준. 그 때문인지 빛의 방향과 거리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곳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잘 안 보이는 곳도 존재해서 가끔 헤매게 만든다.
가장 짜증나는 요소는 인벤토리 부족인데, 화살 제작에 필요한 주재료 마저도 그 양에 따라 인벤토리의 여러 칸을 차지하다 보니 루팅 조금만 해도 금새 꽉 차서 가방을 비우기 위해 상인을 찾아가야 하는데, 같은 재료는 한 칸만 차지하게 해주기만 했어도 좀 더 쾌적했으리라 믿는다. 또한 그 가방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사냥해 뼈와 가죽을 얻어야 하는데, 매번 나오는 고기에 비해 뼈, 가죽은 랜덤이기 때문에 동물 찾아 삼만리에 나서게 된다. 같은 너구리를 잡아도 어떤 너구리는 왜 뼈나 가죽을 주지 않는지 상식적으로도 쾌적함의 관점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나의 무기가 보통 3개의 탄을 갖는데 무기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도 조금 귀찮음을 준다. 기계의 약점을 공략해야하는 전투의 특성상 기계별로 필요한 무기가 있는데, 4개의 무기만 착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시로 가방 열고 무기를 교환하는 과정은 끝까지 귀찮았다. 사냥꾼활, 전투활, 샤프샷활 등 활만 3갠데 이를 두 개 정도로 줄이고 트립캐스터와 로프캐스터도 합치고, 슬링 종류도 하나로 합치는 정도의 통폐합 과정을 거쳤으면 좀 더 쾌적했을 듯.. 그게 아니면 무기 교체를 좀 더 편하게 해주던가..
데이즈 오브 퓨쳐패스트라든가 미래가 과거를 바꾸는 어라이벌 같은 시공간에 혼란을 주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 지구의 중대한 비밀을 넘어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도 적절한 긴장감과 궁금증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고, 대부분의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는 벙커나 연구소등에서는 전투를 최대한 줄이고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선택도 훌륭하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글 하나 읽고 전투 한 번하고 했다면 퀘스트 당 한 번 정도로 조절해 플레이 시간 늘리기가 그들의 선택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쥬얼과 조작감에 감탄하고 스토리에 궁금해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컨텐츠 소비를 아까워하며 하나하나의 요소를 놓치기 싫어 맵 구석 구석을 다녀보고, 그렇게 컨텐츠를 하나씩 클리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플래티넘 트로피까지 획득하게 되는 게임은 처음이고, 이 트로피가 마치 우리가 준비한 걸 다 했으니 안심하고 끝내도 된다라고 말하며 끝을 아쉬워하는 게이머를 달래주는 일종의 선물과 같은 느낌, 그리고 후속편이 나오면 꼭 사주겠다는 약속의 인장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